이진우 선생님, 군자출판사와 제휴를 통해 책 내용 및 그림을 제공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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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ohn H. Gibbon Jr.
아내 여동생의 심각한 심장병으로 마음 아파하던 한 모험가는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인공심장개
발을 위해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스 카렐 박사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. 1927년 최초의 대서양 단독비행
으로 유명해진 그 모험가는 찰스 린드버그였다. 그리고 1936년 카렐과 린드버그는 코펜하겐의 한 의
학회의에서 초보수준의 인공기관을 선보이지만 의학연구보다는 사회활동에 더 관심을 두던 린드버그
는 결국 연구를 중단하고 만다.
린드버그와는 무관하게 인공심폐기원리를 생각해낸 존 기본 주니어는 학창시절 인공심폐기가 없어
심장수술 중 눈앞에서 죽은 젊은 환자의 안타까운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. 그리고 1934년 자신의 모든
정열을 인공심폐기 개발에만 쏟기 위해 전업 연구원이 된다. 마침내 5년 후인 1939년 고양이를 이용한
실험에서 20분이나 인공심폐기의 효능을 증명해 보인다.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가
한 기본은 귀국후 자신의 힘만으론 인공심폐기 개발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IBM의 토머스 왓슨 사
장을 찾아간다. 그리고 그 후 7년 동안 IBM은 새로운 기기의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에서
기본을 해방시켜 준다. 또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 당국도 2만 9천달러의, 당
시로는 전체 연구지원금의 4%를 인공심폐기 개발 작업에 할당했다. 그리고 마침내 1953년 6월 심장벽
에 구멍이 난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공적인 심장수술에 인공심폐기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. 하지
만 그후 연속해서 다섯 차례나 심장수술은 실패하게 되며, 메이오 병원의 존 키르클린이 1955년 모델
을 기본으로 해 보다 안정성있는 인공심페기로 발전시키게 된다.
은퇴 후 펜실베니아 농장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던 기본은 협심증으로 고생했지만, 아이러니하게
도 자기가 만든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수술은 거부했으며, 결국 1973년 테니스를 치다 심근경색으로 사
망하게 된다.
from Mavericks, miracles, and medicine -Julie M. Fenster