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진우 선생님, 군자출판사와 제휴를 통해 책 내용 및 그림을 제공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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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ul Ehrlich
19세기 전형적인 매독치료법은 종기안에 수은을 부어넣는 것이었다. 물론 수은의 유해성은 당시 의
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기에 환자의 몸을 상하지 않고 질병만 치료할 수 있도록 적정량을 부어 넣
으려고 노력했다. 하지만 환자들은 번번이 매독뿐만 아니라 수은 중독에까지 시달려야 했다.
밥먹는 일을 연구에 방해되는 존재로만 여겼던 에를리히는 실제로 연구에 골몰해 끼니를 툭하면 걸
렀지만, 뛰어난 유머감각과 털털한 성격으로 주위사람들과는 잘 어울렸다. 하지만 19세기 후반 독일
은 각자 속한 계급과 지위에 따라 행해야 할 지침이 정해져 있는 경직된 사회였으며, 항상 예의바르며
정중한 에를리히였지만 당시 독일의 그런 형식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, 더욱이 거기에 맞춰 출세
길을 가고 싶어하지도 않았다. 이런 그의 성향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맞물려 그를 더욱 궁지
로 내몰았고, 결국 병원에 나온 뒤 베를린 교외에 살면서 집에 개인 실험실을 마련하게 된다.
하지만 그의 재능에 걸맞는 대우를 못 해주는 것에 대해 항상 마음 아파하던 로베르트 코흐의 주선
으로 비록 무급이지만 질병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며, 여기서 에밀 폰 베링이 개발한 디프테리아 항독
소를 크게 개선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낸다. 하지만 치료제를 통한 이득을 나누기로 했던 베링은
배신을 하고 에를리히는 돈과 학문적 성과 모두를 빼앗긴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.
그러나 주머니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듯이 에를리히의 재능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었다.
당시 프랑크푸르트 정부관리였던 프리드리히 알토프는 에를리히를 위해 두 곳의 연구소를 마련해 주
었으며, 그곳에서 마침내 매독의 치료제인 아르스페나민을 일본인 연구원 하타와 함께 개발하게 된
다.(이 약제는 페니실린이 개발된 1943년까지 매독 약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.)
그리고 당시 바다 건너 미국에 살던 토머스 에디슨은 그 해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두개의 사건중 하
나로 에를리히의 치료제 개발을 꼽았다. 다른 하나는 중국에 공화국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이었다.
from Mavericks, miracles, and medicine -Julie M. Fenster